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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30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 단순 리마스터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

 올해 블리즈컨라인 2021에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 공개되었다. 검증된 명작이고, 나도 비교적 최근까지 꽤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게임이라 더 반가웠던 소식이었다. 4K로 깔끔하게 재구성된 환경과 깔끔한 스킬 이펙트를 보면서 발표 내내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까 보면 별 내용 없던 실망스러운 내용이 많았던 블리즈컨임에도 이 소식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을 분위기였으니.

 그리고 얼마 전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의 PC버전 알파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한정된 직업으로 두 개의 액트만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한 분량이었다. 얼마나 기대감이 컸으면 벌써부터 액트1 카운테스 런으로 온갖 룬워드를 만들어 입고, 심지어는 막혀 있는 액트까지 모종의 방법으로 밀고 들어가 깨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 넘쳐나는 테스트였다. 다량의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그래픽적인 측면에서는 캐릭터 생김새가 늙어 보인다거나(20년 만에 모인 고등학교 동창회 드립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스킬 이펙트가 허접해 보인다거나 하는 일부 단점을 제외하고는 디아블로 2 원작의 공포감을 잘 살린 깔끔한 모습이었다. 일단 겉보기에는 합격이었는데....

 여러 웹진에 올라온 개발자 인터뷰를 보면서 기대감이 점점 우려스러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개발자는 '원작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발할 것이며, 이에 인벤토리 확장 같은 편의성 개편은 없으며, 추가 콘텐츠도 없을 예정' 이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열심히 디아블로 2와 파생 모드를 하는 입장에서 많이 답답한 소리다. 왜냐면 20년 전의 디아블로 2가 혁신적인 게임이었을지라도, 지금 와서 하기엔 불합리하고 까다로운 부분이 참 많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미어터진다

 제일 먼저 인벤토리 문제. 안 그래도 좁아터졌는데, '참'이란 아이템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좁아터진 인벤토리가 더 좁아터지는 걸 넘어 아이템 하나 제대로 못 줍는 게 일상이다. 참이 뭐냐면 별도의 장착 없이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는 것으로 캐릭터를 강화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부적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물건은 확장팩 파괴의 군주에서 나온 아이템인데, 스킬 레벨을 올려주거나 체력과 저항 등을 빵빵하게 챙길 수 있는 등 인벤을 가득 채우면 채울수록 캐릭터의 능력이 엄청나게 강해지기 때문에 모든 디아블로 유저들이 인벤토리를 인벤토리로 쓰지 못하는 원흉이 되었다. 거기에 디아 2 세팅 획일화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이 참이란 아이템 덕분에 인벤토리 자체를 거의 못 쓰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서, 디아2를 지금까지 하는 유저들은 제발 인벤토리 좀 늘려달라 아우성치는 상황이다. 실제로 몇몇 모드는 자체적으로 인벤토리를 크게 넓혔으며, 참으로 인한 밸런스는 인벤토리 내에 참 옵션이 적용되는 구역을 따로 설정하여 해결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볼 법도 한데, '밸런스'나 '원작 고증' 같은 변명으로 그런 팬들의 요청을 완강하게 거부해버리니, 이 사람들 완강기인가.

국민 최종템 '룬워드'에 들어가는 각종 룬들의 드랍률

 비정상적인 아이템 드랍률도 문제다. 커뮤니티 등지에서 쉽게 나눔되는 가성비 좋은 유니크들도 극한의 앵벌이 없이는 줍기가 많이 힘드며, 좀 많이들 쓴다 싶은 고급 아이템들은 폐지 줍기로 열심히 노가다해도 래더 기간 중에 겨우 만들까 말까 한 너무한 드랍률을 보인다. 이제는 사실상 봇 프로그램에 의지해서 룬을 줍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토를 돌리는 것 자체가 약관 위반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심각한 문제. 유튜브만 봐도 고작 샤코 하나 주으려다가 며칠씩 걸리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세계최초 유일무이 Auto 2 Win 게임 디아블로 2

 게임 시스템에 큰 변화가 없다면 당연히 트레이드 역시 교환불가/계정귀속 개념 없이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할 텐데, 이러면 오토가 당연히 창궐한다. 안 그래도 디아블로 2 오토 돌려다가 용돈벌이 하는 아재들이 비일비재하고, 저 머나먼 대륙에서는 오토로 레어 아이템까지 주문제작(?)해다가 팔 정도로 '돈이 되는 게임' 디아블로 2인데, 이걸 무슨 수로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물론 인터뷰에서는 배틀넷 환경의 변화와 오랜 모니터링 등으로 오토를 잡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지만, 아이템이 죄다 계정 귀속이라 트레이드로 쌀먹할 여지가 거의 없는 똥...아니 디아블로 3도 큐브런 공방 몇 판 돌리면 절반 이상이 재료 수급하는 오토 계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봇을 잡을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막을지 도저히 신뢰가 가질 않는다. 단순히 봇을 잘 막겠다는, 집 지키는 똥개도 할 수 있는 말보다는 시스템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걸까?

죽어라 때려도 안 죽는 물리 면역

 무너진 밸런스와 높은 진입장벽도 문제다. 밸런스야 다른 온라인 RPG에서도 주요하게 부각되는 문제점이지만, 워낙 오랜 기간 밸런스 조정이 없던 게임인 디아블로 2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스킬이 정말 많고 그에 따른 빌드 역시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좋은 스킬과 나쁜 스킬의 격차가 엄청나게 높아서 대부분의 스킬은 맨땅에서는 정말 써먹기 어렵고, 거기에 나중에 추가된 스킬 시너지 시스템 덕분에 그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특히 게임의 특성상 많은 적을 항상 마주치는 게임이라 한 번에 많은 적을 상대로 하는 멀티타겟팅 스킬이 유리한데, 그런 쪽으로 밸런스가 잡히면 결국 몇몇 캐릭터 이외에는 정말 취급이 박해지는 결과가 나온다.

 거기에 헬 난이도 이상 올라가면 모든 몬스터가 한 가지 속성 이상에 면역(그 속성의 대미지를 받지 않음) 상태인데, 이렇게 되면 밀리 캐릭터나 한 가지 속성을 쓰는 캐스터 캐릭터는 사냥에 애를 먹게 된다. 결국 효율이 좀 떨어지더라도 캐스터는 2속성으로 가거나 아예 매직 데미지로 사냥하는 해머딘을 고르게 되는데(매직 데미지 이뮨 몹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대부분 언데드라 홀리볼트로 처리 가능), 도대체 게임 밸런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개선사항에서 최우선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때깔은 참 고운데, 때깔만 고운 푸드코트 장식용 음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발매 전부터 굉장한 그래픽과 함께 골드 자동 줍기나 창고 확장 및 계정 창고 추가 등 여러 편의사항이 등장해서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지만, 이렇게 과거 추억팔이에 연연해 기존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대감을 접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고전과 구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디아블로 2는 확실히 고전이다. 지금 해 봐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무서우면서,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반면에, 디아블로 2의 몇몇 시스템은 현세대 게임과 비교해보아도 확실히 구식이다. 포션과 스크롤조차 겹칠 수가 없고, 쓸데없이 초반 플레이만 방해하는 스태미나 시스템이라던가, 죽었을 때 마을에서 던전까지 달려가 시체를 주워야 하는 등 플레이에 방해되고 불쾌감만 주는 시스템이 한가득이다.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의 개발진은 개발 모토를 '과거의 좋은 추억을 최대한 잘 되살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백 원짜리 불량과자나 분식집 앞 피카츄 돈까스를 지금 사 먹으면 그때의 추억만 잠시 되살아날 뿐 맛이 없어 다시는 먹지 않는다.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 '옛 세대의 추억을 되살리고, 그 추억을 신세대 게이머에게 잘 전달'하려면, 단순하게 그때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안일한 방식으로 개발되서는 안 된다.

Posted by RainFo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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