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절

리듬게임 2021. 8. 23. 15:35

리듬게임을 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즐기는 입장에서 볼 때, 요새 리듬게임 채보들은 어려움과 재미를 동일시하게 된 것 같다. 채보를 무작정 더럽게 짜고 난 뒤 거기에 당한 고수들이 질질 짜면서 하루 종일 인생과 돈을 갈아 넣는 모습을 낄낄대며 즐기는 마조히스트들인 게 분명하다. 공사장 소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지는 노트를 꾸역꾸역 받아내기만 하는 그런 게임이 언제부터 리듬게임이었을까. 리듬게임은 이제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가볍게 몇 판 즐기던 게임이 아니라, 땀 뻘뻘 흘리면서 온몸을 마하 9의 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미친 초능력자들의 자기 과시 게임이 되어버렸다.

과거에도 고난도 콘셉트의 곡이 없지는 않았다. 그나마 고난도임에도 들어줄만했던 노래들이 많았고, 극소수의 고수들을 위한 도전과제에 가까웠기 때문에 별 이야기가 없던 거고. 그 시절 리듬게임 노래만 최고이며 지금 나오는 '노래'들이 전부 쓰레기라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나오는 노래들이 조금 더 좋은 구성과 깔끔한 마스터링을 거친 훨씬 양질의 곡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노래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작곡가들이 자신의 노래에 고난도 채보가 붙길 기대하고 있다. 직접 채보를 짜는 발광 BMS 고릴라 출신 작곡가는 제쳐두고서라도, BPM이 빠르고 전자악기를 많이 쓴 악곡이 필연적으로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모두 비슷한 유형으로 작곡을 한다. 평균 BPM은 하늘을 뚫고 화성을 향해 가며, MAX 300의 BPM뻥튀기 300이 아닌 진짜 300~400 BPM을 뚫고 나가는 정신 나간 속도를 자랑하게 되었고, 그와 반비례하여 악곡은 점점 번잡하고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 지경이 되니 "내가 똥 싸는 소리 녹음해다가 노트 7기급으로 박아 넣으면 고수들이 욕하면서 한다"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

한 게임을 마스터하면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도 잘하게 되는 게임이 리듬게임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평균 난이도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근데 그거도 어느 정도껏이어야지. 고수들조차 손사래 치면서 기피하는 노래와 채보가 있다는 걸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리듬게임의 악곡 하나하나는 다른 게임에서의 레벨 디자인에 상응하는 요소인데, 악곡이 기피된다는 건 레벨 디자인에 실패했다는 말이고, 레벨 디자인에 실패했다는 것은 게임을 잘못 만들었다는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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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해보기 초기에는 온라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급하게 만들어본 짤

 이지투온의 세 번째 부활. 2020년 최대의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이 아니었을까. 2013년, 리부트 이지투온이 게임 퍼블리링계 마이너스의 손 스마게의 손아귀에서 단 6개월만에 산산조각난 이후, 이지투 시리즈의 PC 진출을 엄청 부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이지투온이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이유를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종잡을 수 없는 BM이 아니었을까. 이미 15만원짜리 엘라여왕은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 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곤 할 정도니. 그 외에도 초창기 서비스 당시에는 배속 하나하나를 게임 아이템으로 구입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고 말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온라인 리듬게임이 합리적인 과금 상품을 고안해내지 못해 명맥이 끊어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지투온 역시 필연적으로 맞이했을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게임 엔진 자체의 한계도 있였다. 구 이지투디제이의 낡은 엔진을 기반으로 한 이지투온은 2000년 초중반 양산형 온라인게임 수준의 UI를 스킨만 갈아끼우다시피 하면서 유지해 왔고, 엔진의 취약점을 이용한 핵쟁이가 판치거나 몇몇 키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곡이 수록될 정도로 위태위태한 항해를 계속하다 결국 침몰해 버리고 만 것이다.

 결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싹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총체적 난국이었다. 적어도 이지투온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더 이상 온라인 리듬게임은 돈이 안 된다는 사실만 두 번 연속으로 확인시켜 준 셈이니 리듬게임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 여러가지로 착잡한 기분만 들게 만든 게임이었다.

 그런 이지투온이 부활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진짜 절치부심해서 아예 밑바닥부터 싹 뜯어고친 물건을 들고 나왔다. 온라인게임이 아닌 스팀에 출시되는 풀 프라이스 게임으로 말이다. 세 번 속으면 속는 놈이 병Sin이랬는데 한번만 더 속아도 되려나.

 다른 프랜차이즈이긴 하지만,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가 스팀에 린칭한 뒤 2020년 12월 기준으로 50만장을 팔아치우는 흥행으로 인해 이지투온 역시 풀프라이스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한다면 어느 정도 흥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이 들린다. 물론 낙관적으로 볼 때의 이야기이고, 이지투 시리즈 전체의 세계적 인지도로 보았을 때에 그 정도 흥행이 가능할지는...

 일단 3월 17일에 봅시다. 나머지는 출시하고 나서 천천히 판단해도 안 늦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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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리듬게임은 근근히 그 생명을 유지하고는 있다. 고인물화가 되어도 유저 풀이 워낙 크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작은 유저풀에서 유저들의 지갑을 간신히 쥐어짜면서 버티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리듬게임의 미래가 썩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비마니 프랜차이즈가 기존의 게임들로 근근히 생명연장만 하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본의 대형 오락실을 가 봐도 마이마이와 츄니즘 등 세가 프랜차이즈의 리듬게임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한 켠에, 일부 매니아층이 탄탄한 리듬게임을 제외한 비마니 프랜차이즈 리듬게임은 파리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미 코나미는 스스로 게임 회사이기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임들이 언제 사라지고 재활용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당장 산소호흡기 달고 있는 게임 중 뮤제카는 JAEPO에서 비시바시 신작으로 부품이 재활용된 이미지가 공개되어 뭇 리듬게이머를 비탄에 잠기게 만들기도 했다. 매니아층이 빵빵한 비마니 리듬게임 또한 외주와 동인 위주로 업데이트를 굴리고, 그 업데이트마저 없데이트가 되어버리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반면에, 지금 잘 나가는 리듬게임이 미래가 밝냐면 그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기성 문화와 엮여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해도 거부감 없는 게임이 리듬게임이었다면, 지금은 흔히 말하는 '오타쿠' 문화의 근원이 리듬게임이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은 머리 수만큼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에 어느 문화가 높고 낮음을 가릴 수 없이 모두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겠지만, 문화의 우열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화적 기반의 한계가 명백하게 좁고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아티스트와 메인스트림 아티스트의 컨텐츠를 가져오는 것보다 제작비를 절감하고 동인아티스트와 동방 어레인지 등등을 넣으면서 특정 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에게 어필한다면 그 가성비는 이루 말할 것이 없지만, 점점 게임의 시선이 주류와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여진다. 점점 유입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거다. 당신이 동방이니 뭐니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펌프 한 판을 하면 위아래와 베토벤바이러스를 고를지 아니면 배드애플을 고를지는 자명하지 않을까. 사람은 익숙함에 이끌리는 법이다. 메슬로우의 욕구위계에서 의식주 다음이 '안전'에 대한 욕구인데, 안전함이란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리듬 게임의 몰락은 기존 리듬게임 유저들의 피로감을 키운 것도 한 몫을 한다. 유입이 거의 끊겨가는 상황에서 게임사는 있는 유저들의 지갑을 최대한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히든곡을 플레이 하기 위해 코인을 있는 대로 꼴아박게 한다던가, 메인 화면 캐릭터를 눈 크고 가슴 큰 캐릭터로 바꾸기 위해 아케이드 게임에 랜덤박스 시스템을 도입한다던가 하는 F2P에서도 넣으면 욕 먹기 딱 좋은 짓만 하고 있다. 유저들은 할 게임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아무튼 돈을 쓰다가, 피로감을 과하게 느끼고 게임에서 손을 턴다. 당장 스팀에서 배틀그라운드를 32000원에 구입하면 추가로 돈을 안 내고도 질리도록 게임을 할 수 있다. 그 돈조차 아까우면 다른 F2P 온라인 게임을 아무거나 잡고 시작해도 아주 싼 값에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 물론 아케이드 게임과 컴퓨터 게임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온갖 '가성비'를 따지는 현대사회에서 누가 이런 지적을 안 할까 싶기도.


 이런저런 한탄을 해도 변하질 않을 거고, 나도 변하지 않는 게임에 오백원짜리나 집어넣을 거고, 누군가는 또 게임을 그만두면서 점점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해진다. 비주류의 비애라고 생각해야 될까. 장르 자체가 끝장나지는 않겠지만, 아케이드 리듬게임을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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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드제로

 일하고 있는 곳에서 모종의 광고(?), 협찬(?) 같은 걸로 홍보 포스터가 들어왔길래 궁금해서 깔아놓고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다. 슈팅에 리듬을 섞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게 슈팅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그냥 연출만 슈팅게임이다 수준. 게임성은 그냥저냥 리플렉비트에 그루브코스터 섞어넣은 느낌이고 난이도 또한 리듬게임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카오틱 모드를 몇 판 해보고 진한 약기운을 맛보았다. 초기버전은 꽤 실망스럽다고도 느낄 수 있는 구성이지만 앞으로의 업데이트가 기대되는 물건.

2. 아르케아

 음식은 못만드는 영국에서 만든 리듬게임이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사볼 베끼고 2D 눈깔괴물 일러스트 박아놓은 양산형 리듬게임 같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꽤나 깊이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같은 레벨인데 이건 깨고 이건 못 깨는 것부터 진한 사볼 구버전의 향기가 느껴진다. 최근 나오는 리듬게임이 다들 그렇듯이 큰 인기보다는 컬트적인 인기로 남을 것 같은 작품이다.

3. 프리파라 아케이드

 일단 이건 리듬게임이 아니다(...). 한국판은 모종의 헬적화를 거쳐서 30프레임밖에 나오지 않는 처절한 기기상태를 자랑하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리듬감을 찾는 것은 터치가 절대 씹히지 않는 리플렉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딱 아동들(과 나처럼 마음만은 초등학생들인 어른이들)이 좋아할 만한 율동과 손발리 오그라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이티켓을 손에 집어들었을 때는, 이미 자괴감 따위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4. 프로젝트 디바 퓨처톤 아케이드

 이미 비트크래프트 사이클론따위는 훌쩍 넘겨버린 컨텐츠 없데이트 기간을 거쳐 결국 얼마 전에 두 곡이 업데이트 되었다고 한다. 뭐 이 게임은 음악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미쿠 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5. 피아노 타일 2

 중간에 재채기해서 더 이을 수 있는 구간을 실수했는데 페이스북 친구 70명 중 1등이란다. 세상에.

6. 네온FM

 터치가 너무 씹히는 바람에 슈퍼갓곡 브레인파워를 질러놓고도 제대로 플레이하질 못하고 있다. 참고로 브레인파워는 오쓰 오리지날 송이 아니다.

7. 온게키

 마이마이와 츄니즘을 만든 세가 내 리겜팀에서 만든 슈팅+리듬+뽑기를 조합한 신개념 리듬게임이란다. 아직 로케테스트 단계이고 요것도 정발은 요원해 보인다만 차라리 정발을 안 하고 일본에서만 굴러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이런거 만들 시간에 해외시장이나 공략하는 게 백배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8. 댄스러쉬

 세계최고의회사 코나미에서 만든 신개념 댄스리듬게임이라고 한다. 아직 일본에서만 로케테중이고 이게 솔직히 한국정발은커녕 정식 출시나 할까 의문이 드는 게임이지만 그래도 몸 움직이는 게임 치고 재미없는 게임은 없으니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긴 한다. 게임방식은 발로 하는 츄니즘이라고 보면 되겠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방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발전이 없음. 이미 코나미는 자기 스스로 게임회사이기를 포기했으니 이렇게라도 신작이 나오는 데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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