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추위가 매서웠던 3월 말의 평범한 주말,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돌풍까지 장난 아니게 불었던 날씨 때문인지 그날따라 국물 음식이 무진장 당겼다. 일하는 가게 근처 '하노이 별'이라는 이름의 쌀국수집에 자리를 잡고 뜨거운 차로 식은 몸을 달래다가, 우연히 지인들과 만나 얼떨결에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요새는 '미스 사이공' 같이 싼 가격에 쌀국수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아져, 옛날보다는 쌀국수를 접하기 조금 더 편해졌다. 이런 쌀국수는 쌀국수 축에도 못 낀다며 성내는 정통 쌀국수 예찬론자들의 매서운 비난(?)이 있겠지만, 그만큼 쌀국수를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기도 했으니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거랑 별개로 저가형 쌀국수 전문점을 즐겨 찾지는 않지만. 이 날 방문한 '하노이 별'은 '미스 사이공' 같은 저가형 쌀국수집보다 좀 더 급이 높은 체인점이라고 알고 있다. 일단 고수와 스리라차 소스가 있으니 나름대로 만족이다.
각설하고, 양지와 차돌을 듬뿍 올리고 고수를 한 움큼 얹은 쌀국수를 먹어 보자. 진하고 개운한, 이국적인 향취가 듬뿍 배어나는 국물이 차갑게 식은 몸을 녹인다. 뒤이어 탄력 있는 면발과 아삭한 채소, 쫄깃한 양지머리가 주린 속을 달래준다. 배가 불러오지 않는다면 평생동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종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빈 속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피곤해진 몸이 쌀국수 한 그릇으로 생기를 되찾는 순간이다. 식사를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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