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연남동에 새로 생긴 '반미프엉'이란 반미 전문점에 다녀왔었다. 베트남 호이안에 위치한 유명 식당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라는데, 사실 베트남을 제대로 가 본 경험이 없어서 이 가게가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유명하다고 인터넷 이곳저곳에 소문이 자자하니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찾기 힘든 위치에 가게가 있다. 가게보다는 가정집만 나올 것 같은 골목을 굽이굽이 헤매다 보면, 호이안의 유명 관광지 '호이안 올드타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 골목 어귀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게 베트남 감성이라는 건가. 사실 이런 감성에 젖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건물 세워진 모습을 보니 묘하게 대만의 '지우펀'도 생각난다.
1층 스탠드는 테이크 아웃 전문 매장. 포장을 해 간다면 여기서 주문하면 된다. 메뉴는 식사 매장과 동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포장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뒤에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인테리어부터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겨왔다. 싸구려 이발소 그림, 흑백 텔레비전, 낡은 책 더미, 탁상시계, 양철 깡통과 주전자, 그리고 나무 탁자와 마룻바닥은 마치 이 가게가 사실은 한국에서 세워진 게 아닌 베트남에 지어 놓고 통째로 뜯어서 한국에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을 들게 해 주었다. 사실 이것들 전부 인테리어 매장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겠지만, 지금은 그냥 감성에 젖어 보자.
오픈 기념 이벤트. 여길 5월 5일에 방문했었으니 이 때가 막 오픈 이틀 차였다. 포스팅을 올리는 지금은 콜라도, 수첩도 전부 마감되어서 받을 수 없겠지.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콜라 한 캔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반미에 곁들일 병 맥주가 먼저 나왔다. 맥주는 뚜껑을 딴 뒤 저렇게 페이퍼 타월로 감싸서 나온다. 베트남 맥주는 잘 모르기 때문에 친구의 추천으로 하노이 맥주를 주문. 강하지 않고 적절한 홉향과 아시아 맥주 특유의 알싸한 탄산감이 있어 반주로 마시기에 딱 좋다. 반미에도 잘 어울리고.
친구 중에 고수와 오이를 못 먹는 녀석이 둘이나 있어, 주문하는 데 이거 빼고 저거 빼고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시킨 건 왼쪽에서 두 번째, 바베큐 반미에 고수 '아주 많이'. 친구들이 죄다 기겁했지만, 나는 여기까지 와서 비싼 돈 주고 반미를 시켜서 고수를 빼고 먹는 친구들이 더 이해가 안 된다. 일단 경악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한 입 먹어 보자.
빵 질감이 딱딱하다면 딱딱하고, 부드럽다면 부드러운 묘한 굳기인데, 베어 물 때마다 재료가 조금씩 자리를 이탈한다. 먹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완전히 흘리지 않고 먹기는 힘들 것 같다. 맛은 상상하는 그대로. 숯불향 돼지고기를 바게트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 맛이다. 하지만 고수가 함께하니 평범할 것 같은 샌드위치에서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겨왔다. 단순히 고수에서 나는 향취가 아니라, 다른 재료와 고수가 어우러져 나오는 묘한 향취. 고수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 묘하고도 중독성 있는 느낌 때문에 고수를 먹는다. 거기에 목이 메일 것 같으면 방금 주문한 사이공 비어 한 모금. 베트남을 제대로 가 본 적은 없고, 이 느낌이 베트남에 간 기분인지도 모르겠지만, 키치 한 인테리어로 도배된 가게 안에서 이국의 향취가 듬뿍 느껴지는 반미를 먹으니 잠시 한국을 떠나온 기분이 든다.
고수 왕창 넣은 반미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친구 하나가 고수를 따로 요청했다가 몽땅 남기는 바람에(--;;) 내가 대신 밑바닥까지 싹싹. 기대 이상으로 괜찮네 이거.
반미프엉 연남동은 연남동 주민센터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연트럴파크를 쭉 걷다가 경신아트빌에서 꺾어 들어가면 눈에 확 띄는 노란색 건물입니다. 지하철로 가기 약간 애매한 위치라 친구나 연인하고 수다 떨면서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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